여행/이탈리아, 스위스(Italia, Switzerland)

Day 3-2. 라가주오이 산장, 그리고 고산병

내나 2019. 7. 28.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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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2]

 

 

소화제도 먹고, 멀미약도 복용한 후 조금 돌아온 정신줄을 부여잡고 라가주오이 산장으로 출발했다.

코르티나를 벗어나니 차를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군데군데 펼쳐지기 시작했다.

 

돌로미티에서 처음으로 차를 멈추게 만든 풍경

 

뾰족한 침엽수들이 늘어서있는 돌로미티의 도로

 

뾰족뾰족한 나무들, 많은 구름과 그 뒤에 숨겨진 높고 희끗희끗한 돌산들.

날씨가 흐려 경치 감상은 마음껏 하지 못했지만, 아 여기가 돌로미티구나~ 하는 생각은 절로 든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드디어 라가주오이 산장 Rifugio Lagazuoi 으로 가는 케이블카에 도착!

 

 

무료 주차장(이라기보단 공터에 가깝지만)에 차를 세우고 가지고 갈 짐을 정리했다.

도미토리를 예약했기 때문에 캐리어를 다 들고 갈 수는 없을 것 같고,

주차장도 도둑 위험은 적어보여(사실 누가 이 산골까지 와서 차를 털어갈까 싶은 생각이 든다😁) 큰 짐들은 트렁크에 넣어두고 하룻밤 묵을 짐만 간단히 챙겨 올라가기로 했다.

 

작은 캐리어 하나에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기고, 길 건너 가게에서 간단한 음료도 구매한 다음

막차를 타고 라가주오이 산장으로 드디어 출발!

 

케이블 카 타는 곳, 그리고 꽤 큰 케이블 카

 

15분 정도 올라갔을 때. 주차장이 아주 작게 보인다.

 

케이블카에서 보이는 구름, 이 날은 날씨가 엄청 흐렸다.

 

구름을 건너 드디어 산장에 도착.

마치 비행기라도 탄 듯 새로운 나라에 발을 디딘 기분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한쪽은 구름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얀 풍경이, 다른 한쪽은 희끗하고 거대한 돌산이 나를 맞이하고 있다.

고도 탓인지 날씨 때문인지 계절이 바뀐 듯 쌀쌀하기까지 하다.

 

여기는 라가주오이 케이블카
한쪽은 어떤 풍경인지 가늠도 안될만큼 하얗게만 보인다.
정말 보이는게 1도 없다

 

엄청 흔들린 사진이지만.. 산장 내부 사진은 이것 뿐ㅠ

 

구름 탓에 구경할 것도 없고, 제공해주는 간식거리도 먹고 나니 할 일이 없어 저녁식사 전까지는 방에서 쉬기로 했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6인실 도미토리.

도미토리, 공용욕실을 싫어하는 나지만 늦은 예약 탓에 2인실은 이미 예약이 마감되어있었다.

 

높디높은 곳에 있으니 시설이 나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실내는 아늑하고 깔끔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독서실 같은 조용한 방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쉬었다.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

식당으로 올라가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하며 멍하고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시적이려니 생각하고 식당으로 올라가 이름이 적힌 자리에 앉아 식사를 기다렸다.

 

내 이름이 적힌 명패

 

자리는 랜덤으로 지정해주는 것 같았다.

6인 자리이지만 4명이서 사용했고,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분은 두 할머니.

한 분은 영국에서 오셨는데 트래킹 여행을 왔고, 라가주오이까지 걸어서 올라오셨다고.. 어메이징😲

나보다 연세가 두 배는 많아 보이시는데 난 케이블카로 편히 올라오다니..ㅋㅋ 왠지 웃겼다.

 

하지만 영국 할머니의 초빠른 영어 탓일까 고산병 증세가 심해진 탓일까

이야기에 집중도 잘 안되고 어지럼증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던 때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라가주오이 산장의 저녁식사

 

코스 요리처럼 하나의 음식을 다 먹어갈 때쯤 다음 식사를 서빙해준다.

사진처럼 양이 꽤 많지만, 다음 접시가 나오기 전 원하는 음식은 따로 리필까지 해준다.

 

컨디션 난조였지만 깨작깨작 먹어 보는데(밤에 배가 고프면 답도 없을 것 같단 생각에..) 점점 상태는 안좋아지고..

급기야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냈다.

두 번째 음식은 손도 못 대고 병든 닭마냥 골골거리며 식사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

남편은 나 때문에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내 상태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고..

 

디저트 같은 것도 줬던 것 같지만, 기억도 잘 없는 식사시간이 끝나고

고산병에 대해 검색해보던 남편은 극단적인 설명을 보곤 겁이 났는지, 스탭에게 내려갈 방안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케이블카 운행이 종료되어 걸어서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약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내 상태에 대해 설명했지만 가진 약은 아스피린뿐이라고..ㅠㅠ

(사실 고산병 약이란 게 이탈리아에 있는 지조차 잘 모르겠다. 스위스에서 산 후기는 많더라만..)

 

스탭은 이전에 코르티나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래도 고산병 증세가 맞는 것 같다고 했지만

그분에게도 사실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아스피린을 먹고 누워서 쉬라는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직원들의 걱정과 도움을 받으며 식당에서 좀 시간을 보내어봐도 증세는 여전했지만,

더 심해지진 않는 것 같아 아스피린을 먹고 쉬어보기로 했다.

사우나를 하려고 받아뒀던 샤워 코인과 가운은 스탭에게 회수당하고(안 하는게 좋을 거 같다며 ㅠ_ㅠ)

약을 먹고 조용한 방에 골골 거리며 누웠다.

30분 정도 되었을까? 약 덕분인지 가만히 누워있어 그런지 어지럼증은 조금 괜찮아졌다.

 

그제야 조금 안심한 남편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고대하던 사우나를 하러 갔고,

좀 안정된 나도 잠이 들었다.

남편은 나 때문에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정말 너무나 미안했다. 😥

 

-

 

호옥시나 이 후기를 보고 고산병을 겪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TMI를 해보자면,

난 여행 전년도에 갑상선암으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특히나 방사선 치료 때문에 체력이 엄청나게 떨어졌다가 회사 출퇴근용 체력으로 근근히ㅋㅋ 살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출국 전부터 위가 좀 아팠는데 (방사선 후에 위장이 자주 탈 남ㅠ)

비행기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코르티나로 가는 길에 체함+심한 멀미(원래 멀미 잘함) 탓으로 컨디션이 최하인 상태에서

갑자기 높은 고도에 있는 산장에 올라가서 고산병이 제대로 온 듯하다.

물론 내 뇌피셜이긴 하지만..🤪

 

돌로미티에서 심하게 고산병을 겪었다는 후기는 못 본 걸로 보아,

저와 다르게 평소 건강하신 분이라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걱정되더라도 고도를 서서히 높여가며 여행을 하면 괜찮으실 것 같다.

 

-

 

저녁엔 사실 나도 겁이 나서, 남편과 케이블카 첫 차를 타고 내려가자 약속했지만

다행히 다음 날 아침은 아주 살짝만 어지럽고, 컨디션이 한결 괜찮아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스탭에게 못다 한 감사인사도 하고 하산했다.

 

라가주오이의 너무나 멋진 아침 풍경 사진은 예고편으로!

나머지는 다음 포스팅에서😊

 

라가주오이 산장의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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